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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지식의 고고학> revisited
2018.07.14 22:03 - 사용자 블랑시



1) 고고학은 기념비에 천착한다. 즉, 그것은 담론의 외부를 추론하거나 들여다보거나, 담론 외부의 것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고고학은 단지 그것이 '기념비'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2) 고고학은 담론의 특징적인 힘에 집중하지, 그것과 외부의 담론 사이에서 연속성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3) 고고학은 지식의 규정된 울타리 너머에서 작동한다.

4) 고고학과 그것의 아카이브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의 시원적인 출발점이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하기보다는 담론과 오브젝트 사이의 구조적인 설명을 '다시' 기술하는 것에 주안점을 맞춘다.


by jussi parikka


이런 푸코의 생각과 상상된 미디어 고고학을 연결짓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갔는데, 보르헤스의 저작들을 생각해보니 납득이 되었다.

상상 자체도 담론장 내에 위치지어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에 천착하는 것이 장을 들여다보는 데에 어떠한 도움이 될지는 조금 더 읽어보면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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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chaeology as a symptom 메모
2018.07.13 12:39 - 사용자 블랑시

Elsaesser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지 모르겠다. 엘셰세르? 엘세세어?)의 미디어 고고학에 관한 소론을 읽고 지금까지 나 자신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있는 점이 있어서 몇가지 적어보고자 글쓰기 페이지로 들어왔다. 막상 들어와서 깨달은 것인데, 두개는 천지차이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쓸 이유가 없어졌다.) 가령 Elseaesser의 문제의식은 노회한 시네필의 근심과도 같다. 그는 미디어 고고학의 다양한 과거'들'의 발굴 작업을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자본가-수집가적 강박에 우려를 표한다. 반면 나는 영화의 죽음이나 디지털의 강림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매우 소박하고 이기적이며 소시민적 웰빙에 주안점이 맞춰져있다.






Elsaesser는 미디어 고고학의 비선형성에 대한 주목이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형적인 하나의 역사가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분해되고 소화되어 여러가지 조각들로 분리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미고의 그런 국지적이고 산발적인 접근 방식은(게릴라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편화된 현실의 반영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미디어 고고학을 해독제라기보다 '징후'라고 표현하기에 이르른다.

Elsaesser의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미디어 고고학이 발굴해내는 과거들은 파리카의 저작들에 열거되어있듯이 예술 작품으로 페티쉬화되거나 시장경제에 포획될 위험성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카운터하기보다는 체제에 새로운 활력을 보충해주는, 대마불사의 해독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단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아카이브는 새로움을 변주해내지 못한다. 그것들에 자리한 과거의 유산들은 혁명적 기운을 얌전하게 소거된채 상품으로 유통된다. 물론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또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앎이나 담론의 장을 바꿀 수 있는 유의미한 힘이 미디어 고고학에 있는지 의문을 던져봐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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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1
2018.07.04 10:42 - 사용자 블랑시

나의 수집 강박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공룡 그림들을 모았다. 각종 잡지에서 오리고 붙이고,  공룡 대백과를 여러권 소유했다.

저장과 소유의 기분은 짜릿하고 끔찍할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호더적 습성이 완전히 피우게 된건(full-blown) 초등학교 6학년에 와서였는데, 그 때는 홈쇼핑 카탈로그와 (보그, 엘르같은) 패션 잡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던 것같다. 그 곳에 나와있는 모든 쓰레기같은 활자들과 덧없는 이미지들을 기억하고 아로새기고 되뇌였다. 물론 인쇄물의 냄새도 무척 좋았다. 싸구려 종이의 질감과 부피. 여러번 읽게 되면 이상하게 변형되는 잡지의 견고하지 못함 역시 나의 취향에 걸맞는 것이었다. 나는 산처럼 쌓인 잡지들과 카탈로그들을 들여다보며 뭉클한 심상에 젖곤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그 모든 수집의 기저에는 불안이 있지 않았나 싶다. 존재를 기억해줄 의사-무덤 만들기 같은 것 말이다. 거창하지도 못하고 무의미할 뿐인 돌더미 표식같은 것 말이다. 산 속에 너저분하게 쌓아져올린 돌탑들. 그것에는 소멸에 대항하는 부질없는 몸부림같은 것밖에 없다.


소멸이라 함은 존재의 소멸 뿐만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소멸까지 포함한다. 기억들은 매우 빠르게 부식되고 흩어져버리는 반면 인쇄물들은 제법 느리게 썩어간다. 더군다나 나는 그것을 만질 수 있고, 그것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감각은 안정을 가져다준다. 도저히 연관지을 수 없는 현실에 나를 붙들어매준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수집 강박의 흔적과 같은 행동들, 가령 책이나 문서나, 링크나 데이터 조가리들을 열심히 줏어다가 모으는 것은 거기에서 단 한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나? 나는 어떤 유의미한 것을 생산하고 있나? 진정 수집이라는 것이 소멸을 추동하는 시간에 대항할 수 있는 계제나 되는가?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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