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고학은 기념비에 천착한다. 즉, 그것은 담론의 외부를 추론하거나 들여다보거나, 담론 외부의 것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고고학은 단지 그것이 '기념비'라는 사실에 집중한다.2) 고고학은 담론의 특징적인 힘에 집중하지, 그것과 외부의 담론 사이에서 연속성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는다.3) 고고학은 지식의 규정된 울타리 너머에서 작동한다.4) 고고학과 그것의 아카이브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의 시원적인 출발점이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하기보다는 담론과 오브젝트 사이의 구조적인 설명을 '다시' 기술하는 것에 주안점을 맞춘다. by jussi parikka 이런 푸코의 생각과 상상된 미디어 고고학을 연결짓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갔는데, 보르헤스의 저작들을 생각해보니 납득이 되었다. 상상 자체..
Elsaesser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지 모르겠다. 엘셰세르? 엘세세어?)의 미디어 고고학에 관한 소론을 읽고 지금까지 나 자신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있는 점이 있어서 몇가지 적어보고자 글쓰기 페이지로 들어왔다. 막상 들어와서 깨달은 것인데, 두개는 천지차이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쓸 이유가 없어졌다.) 가령 Elseaesser의 문제의식은 노회한 시네필의 근심과도 같다. 그는 미디어 고고학의 다양한 과거'들'의 발굴 작업을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자본가-수집가적 강박에 우려를 표한다. 반면 나는 영화의 죽음이나 디지털의 강림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매우 소박하고 이기적이며 소시민적 웰빙에 주안점이 맞춰져있다. Elsaesser는 미디어 고고학의 비선형성에 대한 주목이 그다지 ..
나의 수집 강박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공룡 그림들을 모았다. 각종 잡지에서 오리고 붙이고, 공룡 대백과를 여러권 소유했다. 저장과 소유의 기분은 짜릿하고 끔찍할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호더적 습성이 완전히 피우게 된건(full-blown) 초등학교 6학년에 와서였는데, 그 때는 홈쇼핑 카탈로그와 (보그, 엘르같은) 패션 잡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던 것같다. 그 곳에 나와있는 모든 쓰레기같은 활자들과 덧없는 이미지들을 기억하고 아로새기고 되뇌였다. 물론 인쇄물의 냄새도 무척 좋았다. 싸구려 종이의 질감과 부피. 여러번 읽게 되면 이상하게 변형되는 잡지의 견고하지 못함 역시 나의 취향에 걸맞는 것이었다. 나는 산처럼 쌓인 잡지들과 카탈로그들을 들여다보며 뭉클한 심상에 젖곤했다. 지금와..